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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국 성씨 탄생의 비밀
이름관리자
일자2011-12-14 21:54:21
내용
★ 한국 성씨 탄생의 비밀 ★


조선초만해도 성씨있는 양반은 10%뿐이 안되었는데 조선중기 양반계급이
족보를 가지게 되면서 부터 평민들도 각 씨족 별로 구전 해오던
자료에 의하여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토착민들은 지역별 연결에 따라 동일 씨족으로 족보를 가지게 되었다.


집성촌을 이루지 못하고 생활한 유랑민이거나 원래 천민은
성씨없이 돌쇠,떡쇠, 개똥이, 삼돌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웠는데

조선후기에는 양반들의 도움으로 성 하나 만은 가지게 되었고.
1909년 일제가 민적법 시행시 성씨가 없던 천민들에게
다시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일제가 주었는데,
그 때 가장 인기 있던 성씨가 흔하면서도 유명한 "김, 이, 박 등등"이었다.

그래서 유명한 성이 더욱 흔해지게 된 것이다.
일제가 성이 없던 밑바닥 천민(노비)계층에게 이들에게 신청하는 대로
유명성씨의 호적을 준 것은 조선의 양반 성씨들이
씨족별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나온 것이고,
노비를 양민화시켜서 수탈의 대상을 늘이기 위한 식민통치정책의 일환이였다.

일례로 김좌진 장군댁 노비 100명도 안동 김씨 호적을 만들어 가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집 법도는 엄격한 유교의 윤리로 교육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으로 행세하기는 행동거지가 참으로 어렵고 엄했다고 한다.

따라서 천민은 흉네 낼 수도, 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는 사회였다.
현재 품성과 관계없이 성씨로 양반입네 떠드는 사람들은 양반집의 돌쇠이었거나,
그 마을 "개똥이"였을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닌지?

양반은 항상 따르는 권속들에 대한 책임감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중압감을 느끼며 생활하였으며 자신의 행동이 가문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오늘같은 막된 행동이나 막 말을 할 수가 없었으며
지역사회에서 한번 쌍놈의 가문으로 찍혀지면 자녀들의 출가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에 성씨가 그 사람의 품행을 구속했다고 한다.

법도와 예를 생명같이 여기고 살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점에서 양반사회는 순기능 역활도 했다고 판단된다.
성씨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하여 아래의 자료를 첨부해 본다.


2000년에 조사한 우리 나라의 성씨별 인구가 통계청 홈페이지에 떴는데,
1985년 발표 당시보다 성씨의 숫자가 12 개 늘었다.

그 때는 274개였는데, 이번은 286개가 되었다.
우리 나라 10대 성씨의 순위는 변화가 없었다.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김(金)” 씨는 우리 나라 인구의 21.6%인 992만 여 명으로 여전히 제일 많았다.
“이(李)” 씨는 그보다 훨씬 적은 14.8%로 679만 여 명으로 조사되었다.
“박(朴)” 씨는 또 그보다 훨씬 적은 8.5%로 389만 여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잇는“최(崔),정(鄭)”씨는 4% 대이고,
“강(姜), 조(趙), 윤(尹), 장(張)”씨는 2% 대,
그리고“임(林)”씨부터 21위“전(全)”씨까지 1%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성씨별 인구 수가 거의 일정한 차이를 유지하며 계속 나열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성씨는 1위부터 2, 3위의 분포가 비교적 고르게 나타나
특정 성씨로 지나치게 몰리는 경우가 없다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만 1, 2위가 이상할 정도로 특별히 많아진 것은
1900년대 초에 처음 호적법이 시행될 때 “양반이 되고 싶은”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 기형적인 분포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에 “전 국민의 성씨 가지기” 정책을 시행하여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하였는데, 이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각자 자기 집의 위치나 동네의 특징을 살린 성씨를 만들어서 가졌다고 한다.

“田中, 中村, 松下...” 등
다양하게 창씨된 성씨의 숫자가 순식간에 8만 개나 되었는데....

일본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특정 성씨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는 없다고 하며...
또한 성씨만 가지고는 가문의 역사 같은 것은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민족의 역사를 논할 때 성씨가 무언가 하는 것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당연히 성씨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착 같은 것이 거의 없다.
중국이나 한국과는 여기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에 일본이 우리 나라, 즉 대한제국에 와서도
계급을 타파한다면서 “신분 표시가 없는 호적법”을 시행하였고,
여기에서도“전 국민의 성씨 가지기”운동을 전개하여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하였는데, 결과는 일본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국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돌쇠, 밤쇠, 삼월이, 오월이..” 들은
일본처럼 새로이 성씨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이들 대부분이 그 동네 지주나 양반들에게 부탁하여
그 “양반님”들의 성씨를 얻어 와서는 관청에 신고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 때에 김(金) 씨나 이(李) 씨가 갑자기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특정 성씨가 총 인구의 20%를 넘어 가는 경우는 없는데,
“양반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 우리 나라에서만 나타난,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여튼 우리나라는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자연스러이 이루어졌고,
옛날 이야기에 그 많던 “방자, 향단이, 마당쇠, 구월이...”의 자손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슨 무슨 정승, 판서의 몇 대 손”이 되어 버렸고,
오로지 양반의 후손만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양반이 많은 나라가 되었고,
또한 제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불과 100 여 년 전만 해도
“성씨도 없는 쌍놈들”은 제사고 차례고 지낼 수가 없었는데,
요즈음은 집집마다 장손이면 모두 명절날 차례를 지낸다.

참고로 5000년 전부터 성씨를 사용해 온 중국의 경우를 보면
성씨별 인구 1, 2, 3위의 비율은 각각 7.4%, 7.2%, 6.8%로 되어 있어서,
특정 성씨로 몰리는 현상은 없다. 중국은 인구 0.1% 이상을 차지하는 성씨가
모두 129개로 나타났는데, 이 129개 성씨의 인구 합계는 중국 인구의 87%라고 한다.

이는 2006년 1월 10일 중국과학원에서 중국역사상
가장 정밀한 자료조사를 거쳐 발표했다는 “100대 성씨”에 근거한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인구기준 성씨순위”가
1987년의 발표자료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표본조사한 기초자료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1987년 조사는 겨우 57만 명 정도를 표본조사하여 순위를 매긴 것이고,
이번 조사는 그 때에 비하여 500배도 넘는 약 3억 명을 표본 조사하여
순위를 매긴 것이기 때문에 그 정밀도가 엄청나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 중국 10대 성씨는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 양(楊), 황(黃), 조(趙),
주(周), 오(吳)”로 판명되었다.

이 순위는 자동적으로 전세계의 10대 성씨가 되기도 한다.
이 중 “李”는 중국 인구의 7.4%인 9천 60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679만여 명을 합치면 “李”씨는 1억 명을 넘어 가는 세계 유일의

성씨가 된다.

약 900년 전인 서기 1100년대에 북송(北宋)에서 발표한 『백가성(百家姓)』이란

책자가 최초의 성씨 조사 기록이었고, 명(明)나라의 『천가성(千家姓)』,

청(淸)나라의 『백가성(百家姓)』 등이 뒤를 이었으나 이 책들은 모두 성씨별

인구수를 기준으로 서열을 매긴 것은 아니었다.

900년 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趙錢孫李周吳鄭王...”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인구수 순위가 아니었다.

“조(趙)”는 북송을 건국한 황제의 성이었고,
“전(錢)”은 당시 가장 힘이 강했던 오월국(吳越國)의 국왕 성씨였고,
“정(鄭)”은 그 왕후의 성씨였으며, “이(李)”는 그 다음 강국인
“남당(南唐)”의 국왕 성씨였던 것인데...
(중국의 1100년대는 송나라가 약간 힘이 강한 정도였고,
고만고만한 나라들로 나누어져서 도토리 키재기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900년 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인구 순이 아니라
예우(?)를 받아야 할 성씨의 순위였고, 최근 중국 일부 신문에서 보도한
“900년만에 조(趙)가 1위에서 8위로 밀렸다”는 내용은
옛날 기록의 특징을 잘못 이해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 나라 성씨의 순위를 기준으로 하여
중국 성씨 순위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金 : 21.59%, 한국 1위 (중국 64위)
한국 발음이 현재는 “김”이지만 옛날에는 “금”으로 읽었다는 주장도 있음.
현재 중국 배우 중에도 이 성씨를 가진 배우가 있는데 “금성무”라고 보도되고 있음
이 글자의 현대식 중국 표준발음은 “찐”임

李 : 14.78%, 한국 2위(중국 1위 7.4%)
한국, 중국 합하면 1억이 넘어 가는 전 세계 단 하나의 성씨임
중국, 북한에서는 “리”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만 “이”라고 읽고 있음.
그런데, 남한 사람들도 영어로 쓸 때에는 대부분 “Lee(리)”라고 하는 버릇이 있음

박 : 8.47%, 한국 3위(중국 100위 내에서는 안 보임)
한자로 “朴”을 쓰기도 하지만, 원래 “바가지”란 뜻의 순우리말 토종 성씨임.
“박혁거세”의 “박”은 “박만큼이나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붙은 말임
영어로 "Park" "Pak" 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으나 "Paak" 이라고 쓰는 것이 가장 무난함.

최(崔) : 4.72%, 한국 4위(중국 58위)
정(鄭) : 4.37%, 한국 5위(중국 21위)
강(姜) : 2.27%, 한국 6위(중국 50위)
조(趙) : 2.14%, 한국 7위(중국 8위)
윤(尹) : 2.06%, 한국 8위(중국 95위)
장(張) : 2.00%, 한국 9위(중국 3위)
임(林) : 1.66%, 한국 10위(중국 17위/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오(吳) : 1.54%, 한국 11위(중국 10위)
한(韓) : 1.53%, 한국 12위(중국 26위)
신(申) : 1.52%, 한국 13위(고려태조가 하사한 성씨,

일본으로 넘어가 정착한 일족이 있음)


서(徐) : 1.51%, 한국 14위(중국 11위)
권(權) : 1.42%, 한국 15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황(黃) : 1.40%, 한국 16위(중국 7위)
안(安) : 1.39%, 한국 17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송(宋) : 1.38%, 한국 18위(중국 23위)
유(柳) : 1.31%, 한국 19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
홍(洪) : 1.13%, 한국 20위(중국 99위)
전(全) : 1.07%, 한국 21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고려 왕씨 유래설이 있음)
고(高) : 0.95%, 한국 22위(중국 19위)
문(文) : 0.93%, 한국 23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손(孫) : 0.90%, 한국 24위(중국 12위)
양(梁) : 0.85%, 한국 25위(중국 20위)
배(裵) : 0.81%, 한국 26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조(曺) : 0.79%, 한국 27위(중국 27위)
백(白) : 0.76%, 한국 28위(중국 79위)
허(許) : 0.65%, 한국 29위(중국 28위)
남(南) : 0.56%, 한국 30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우리 나라 31위 이후의 성씨는 다음과 같음.

31-40 심(沈) 유(劉) 노(盧) 하(河) 전(田) 정(丁) 성(成) 곽(郭) 차(車) 유(兪)
41-50 구(具) 우(禹) 주(朱) 임(任) 나(羅) 신(辛) 민(閔) 진(陳) 지(池) 엄(嚴)
51-60 원(元) 채(蔡) 강(康) 천(千) 양(楊) 공(孔) 현(玄) 방(方) 변(卞) 함(咸)
61-70 노(魯) 염(廉) 여(呂) 추(秋) 변(邊) 도(都) 석(石) 신(愼) 소(蘇) 선(宣)
71-80 주(周) 설(薛) 방(房) 마(馬) 정(程) 길(吉) 위(魏) 연(延) 표(表) 명(明)

81-90 기(奇) 금(琴) 왕(王) 반(潘) 옥(玉) 육(陸) 진(秦) 인(印) 맹(孟) 제(諸)
91-100 탁(卓) 모(牟) 남궁(南宮) 여(余) 장(蔣) 어(魚) 유(庾) 국(鞠) 은(殷) 편(片)
101-110 용(龍) 강(疆) 구(丘) 예(芮) 봉(奉) 한(漢) 경(慶) 소(邵) 사(史) 석(昔)
111-120 부(夫) 황보(皇甫) 가(賈) 복(卜) 천(天) 목(睦) 태(太) 지(智) 형(邢) 피(皮)
121-130 계(桂) 전(錢) 감(甘) 음(陰) 두(杜) 진(晋) 동(董) 장(章) 온(溫) 송(松)

131-140 경(景) 제갈(諸葛) 사공(司空) 호(扈) 하(夏) 빈(賓) 선우(鮮于) 연(燕) 채(菜) 우(于)
141-150 범(范) 설(?) 양(樑) 갈(葛) 좌(左) 노(路) 반(班) 팽(彭) 승(承) 공(公)
151-160 간(簡) 상(尙) 기(箕) 국(國) 시(施) 서문(西門) 위(韋) 도(陶) 시(柴) 이(異)
161-170 호(胡) 채(采) 강(强) 진(眞) 빈(彬) 방(邦) 단(段) 서(西) 견(甄) 원(袁)
171-180 방(龐) 창(昌) 당(唐) 순(荀) 마(麻) 화(化) 구(邱) 모(毛) 이(伊) 양(襄)

181-190 종(鍾) 승(昇) 성(星) 독고(獨孤) 옹(邕) 빙(?) 장(莊) 추(鄒) 편(扁) 아(阿)
191-200 도(道) 평(平) 대(大) 풍(馮) 궁(弓) 강(剛) 연(連) 견(堅) 점(占) 흥(興)
201-210 섭(葉) 국(菊) 내(乃) 제(齊) 여(汝) 낭(浪) 봉(鳳) 해(海) 판(判) 초(楚)
211-220 필(弼) 궉(?) 근(斤) 사(舍) 매(梅) 동방(東方) 호(鎬) 두(頭) 미(米) 요(姚)
221-230 옹(雍) 야(夜) 묵(墨) 자(慈) 만(萬) 운(雲) 범(凡) 환(桓) 곡(曲) 탄(彈)

231-240 종(宗) 창(倉) 사(謝) 영(永) 포(包) 엽(葉) 수(水) 애(艾) 단(單) 부(傅)
241-250 순(淳) 순(舜) 돈(頓) 학(?) 비(丕) 영(榮) 개(介) 후(侯) 십(?) 뇌(雷)
251-260 난(欒) 춘(椿) 수(洙) 준(俊) 초(肖) 운(芸) 내(奈) 묘(苗) 담(譚) 장곡(長谷)
261-270 어금(魚金) 강전(岡田) 삼(森) 저(邸) 군(君) 초(初) 영(影) 교(橋) 순(順) 단(端)
271-280 후(后) 누(樓) 돈(敦) 소봉(小峰) 뇌(賴) 망절(網切) 원(苑) 즙(?) 증(增) 증(曾)
281 삼(杉) : <남자 2명>
282 우(宇): <남자 1명> 소(肖)예(乂) 빙(氷) 경(京) : <여자 각 1명>
(이상 총 286개 성씨)

이 중 최근에 새로 생긴 성씨 중에는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기재하여 그리 된 것도

있고, 국제 결혼으로 우리 나라 국적을 취득한 동남아 또는 중국 사람들의 성씨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945년에 전쟁도 끝이 나고 살림살이도 일본 내부로 축소되었으니
일거리도 줄어들고 오히려 편해졌다.
일본인들도 이제 성씨를 사용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간다.
100년 동안 의 짧은 역사가 일본인들에게 성씨에 대한 관념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씨에 대한
뚜렷한 자부심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일본인은 성씨의 종류는 8만여 가지로 무지하게 많지만
성씨별 인구 수에 대해서는 아직은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양반의 자손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일본인은 "근본도 모르는

쌍놈들"일 뿐이다.

○ 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제물포고 교감)